토리네집
할머니가 처음 만들어주신 만찬 만둣국 본문
내가 지금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집안일을 대부분 떠맡으신 건 할머니였다.
어머니는.....
알콜 중독과 의처증이 있던 아버지 때문에 집을 떠나 친정에서 지내던 시간이 오래였던 터라 초등학교 초기까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 형제를 떠맡으셨다.
내가 학교를 졸업할 무렵 즈음 할머니는 이미 칠순이 넘어가셔서 모든 감각이 약해지셨을 때라 만들어주시는 음식 대부분이 소금국이었지만 예전에는 그 어느 집 주부보다 맛깔나는 음식 솜씨를 가진 분이었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풍족한 시절도 아니었던 만큼 가족들의 입맛을 책임지는 주부들의 책임도 컸다.
우리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들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만둣국...
처음에는 주로 명절에 할머니의 만둣국을 맛볼 수 있었는데 당시엔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았으니 할머니 혼자 가족들은 물론 우리집을 방문하는 손님들 몫의 만두까지 수백개를 혼자서 만두피를 밀고 속을 만들고 만두를 완성시키셔야 했다.
그 과정이야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과 손수고가 장난이 아닌 음식이 바로 만두다.
속을 만드는 것만 해도 김치, 고기, 당면, 양파, 대파, 후추, 고춧가루 등등 셀 수 없는 재료가 들어가고 그걸 일일이 갈고 뒤섞어 작업을 하다보면 하루 해가 모자라는 대표적은 음식이다.
처음엔 이게 도대체 무슨 음식인지 몰랐던 내 입맛에 한동안은 만두라는 게 그저 식구들이 많이 모이면 먹어야 하는 특이한 음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다는 얘기...
어릴 땐 만두피만 먹었다??
그래, 솔직히 당시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어린 내게 만두는 조금 매운 음식이었다.
흔히 말하는 교자만두?? 그걸 시중에서 냉동 만두로 팔기 시작한 건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였는데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명절에 만들어먹는 만두는 대부분 김치가 왕창 들어가 있어 어느 정도 매운 게 당연한 거였다.
아직 매운 음식에 그다지 적응되어있지 않던 나로써는 저 매운 덩어리를 한수저 크게 떼어 입안에 넣는다는 게 다소 부담스러운 과제중 하나였으니 내가 그나마 만두를 마음 편하게 시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속을 모두 덜어내고 먹는 것 말고는 없었다.
이해심 많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밥상에 올라와있는 음식을 남기는 건 옛날 어른들이 보기에 상당히 매너 위반에 속하는 행동....
요즘도 가만보면 음식 남기는 것에 대해 젊은 사람들 중에도 예민한 사람이 있더라...
아무리 그래도 학교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은 손자가 매운 음식을 못먹으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걸 억지로 먹으라고 강요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만두피를 만드는 과정도 힘이 많이 들지만 몇 백개의 만둣속을 주부가 일일이 손으로 만든다는 건 요즘 같은 조리용 기기들이 많지 않았던 예전엔 정말 난감한 일이었으니..
난 결국 10살이 넘어갈 때까지 가장 핵심되는 걸 빼먹고 겉껍질만 핥았던 셈이네? 😅😅😅
그렇던 내가 초등학교 상급이 될 무렵부터는 모처럼 만두가 식사로 나오면 혼자서 3~4그릇을 해치우는 게릴라 대식가가(??)가 되어버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원래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편인데다 그 무렵부터는 어느 정도 매운 음식에도 적응을 해서 만두의 진맛을 알아버렸다고나 할까.
평범한 날에도 만두를 만드시던 할머니...
그 이후에는 아무 것도 아닌 날에도 만두를 만드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고작... 이런 별볼일 없는 손자를 위해서...
손자들이 좋아하는 거라면 물불을 안가리고 최대한 챙기시던 분, 옛날 말로 하자면 정말 옛날 여자...
자기 몸 하나를 챙길 힘이 남아있지 않을 때도 내가 귀가해 보면 주방 한켠에 앉아 내가 좋아라~~ 외칠 만두를 빚고 계셨다.
요즘은 냉동만두도 초창기 때에 비해 많이 맛있어졌다.
그 시절에 시중 냉동 만두라고 하면 고향 만두??
그 만두를 가장 첫번째로 꼽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좀 느끼하다고 해야 하나...ㅎㅎ
수제 음식에 익숙하신 할아버지가 시중 냉동 만두를 맛있다고 하시는 게 특이하긴 했지만 몇 그릇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던 게 우리 할머니표 만둣국이었다.
이젠 집에서 직접 음식을 조리하는 일도 희귀해져가는 시대..
잠깐만 발품을 팔면 그 시절보다 더 풍성하게 먹을 수 있는 시대인데ㅗ 다시는 먹어볼 기회가 없을 할머니표 만둣국이 지금도 무척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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