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늦은 저녁 축 처진 몸을 이끌고 퇴근하던 길에 어디선가 누군가 날 아는 척을 했다.
가만 보니 2000년대 초반 2~3년간 같은 직장에서 일했던 동생이었다.
당시 내가 4년간 일했던 그 직장 M은 핸드폰 키패드를 조립하는 곳이었는데 요즘은 모두 액정을 터치하는 식이지만 당시는 아직도 저렴하게 거래되고 있는 폴더형 버튼식 핸드폰이 대부분이었고 그 동생도 그곳에서 만났다.
그 이전까지 꽤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은 사장부터 시작해서 그 이하 직원들이 쉽게 말해 승질머리가 뭐 같은 인간들만 모여있는 곳이어서 신입이 들어왔다가도 반나절을 못버티고 조용히 사라지는 그런 곳이었다.
입은 드럽고 하는 행동들은 하나같이 뵨퉤 원산지면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평준화된 남자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아주 괴이한 인간들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닌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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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입사해서 10년이 지나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로 퇴사하는 날까지 내 동생뻘 되는 신입을 본 일이 없다.
그 지옥을 그만두고 몇 년 지나 나도 인력파견업체를 전전하기 시작했었는데 그러다 입사하게 된 곳이자 첫번째 주식회사였던 곳이 그 M사.
요즘엔 개나 소나 다 주식회사지만 당시에는 주식회사가 그리 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원이 300명이나 되는 규모도 꽤 큰 곳이었다.
자그마치 10년만에 날 오빠, 형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수두룩한 곳에 들어가니 한참 동생뻘 되는 아이들이 있는 게 재미있긴 했지만 그 동생들과는 반대로 난 어느새 나이를 확~~ 먹어버렸음을 인식하게 된 곳이기도 하다.
정신세계가 상당히 달랐던 세대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도 제법 솔직?? 당당?? 그런 평을 많이 듣는 편이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동생들은 솔직이나 당당 차원이 아니라 쉽게 말하자면 회사 하나를 들더라도 자기들이 계산하는 방식대로 딱딱 맞아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사는 녀석들이 많아서 꽤 놀랐었다.
특히 엊그제 만났던 그 동생 녀석이 그 중 가장 안드로메다급 녀석에 속한다.
물론 정신세계가 아주 피폐한 녀석들을 제외하고 같이 어울리던 녀석들중에서 말이다.
"저 아무 얘기 못들었는데 오늘 잔업 안하는 거죠??"
틀림없이 팀장이 한시간쯤 전에 작업 라인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오늘 전체 잔업이라고 수도 없이 예고를 했는데 녀석이 못들었을 리가 없는데도 저런다.
결론은.....
그냥 돌아다니면서 얘기를 했지 개개인에게 직접 얘기한 게 아니니 자신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뭐 그런 삐딱한 헛소리를 해대니 팀장은 저녀석 하나 때문에 하루에도 수도 없이 이를 가는 걸 본 기억이 난다.
더군다나 놈이 걸핏하면 하던 얘기중 또 하나가 기억에 남는데 바로 이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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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업, 특근은 형처럼 생활을 해야 되는 사람들이 해야지 우리가 뭐 의미도 없고......"
저 소리에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걸 느낀 게 한두번이 아닌데....
당시엔 병역특례라는 게 있었다.
병역특례라는 건 말 그대로 병역 의무를 대신해서 특정 회사에서 특정 기간동안 근무를 한다는 건데...
그놈을 포함해서 그놈 또래 상당수가 그 병역 특례 자격으로 그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던 거다.
걔들의 논리대로라면 자신들은 이곳에 목메일 필요도 없고 어차피 특정 기간만 끝나면 사라질 몸.
그러니 잔업이나 특근은 자신들의 의무가 아니라나 뭐라나....
술만 퍼마셨다 하면 다음 날 결근은 당연시고...
어쩌다 대학 휴학생이나 졸업생이 잠시 아르바이트 겸 해서 입사를 했을 때도 녀석이 던지는 단골 멘트가 또 있었다.
"그러지 말고 여기 정식 입사할 거면 월급제로 계약하고 정시 출퇴근해요...."
................ 할 말이 없다.
지금은 많은 기업들이 인력난으로 상황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나도 월급제로 일을 해본 적이 있지만 월급제라고 해서 정시 출퇴근이 당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자체도 그렇지만 일반 사무직에서도 불가능한 게 더우기 제조업체 현장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그렇게 얼마 후 대학에 입학해서 회사를 퇴사했던 그녀석과 벌써 한 20년만에 길에서 마주친 거다.
딱히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한 것도 없지만 그냥 머릿속으로 녀석의 근황이 그려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지금 뭐해요? 거기서 무슨 일 해요? 에이, 고작 그런 일은 뭐하러 해요..."
역시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녀석....
분위기를 보니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과 비슷한 곳에서 관리자쯤으로 일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오히려 그녀석이 측은해보이는 건 왜일까...
그녀석 말대로라면 자기 밑에서 일하는 현장직 사람들을 상당히 비웃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는 건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사무실 사람들이 가끔 조회시간에 단골로 내뱉는 "우리는 다 같은 직원"이라는 말도 솔직히 지나가는 뭐가 웃을 헛소리라는 얘기지...
뭐, 뻔히 알고 있는 얘기지만 한가지 그놈이 여전히 모르는 게 있다.
나도 이제는 옛날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나이.
그녀석도 남보다 나아보이려고 늦게 대학도 졸업하고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겠지만 아무리 대학을 나오고 직장 사무직에서 일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에게나 그 사람이 생각하는 "급"이라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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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제 아무리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어도.....
회사와 공장은 전혀 다르다... ^^
우리가 쉽게 알고 있는 OO기업들, 높은 건물, IT, 전문직 등등이 아닌 이상 공장이라는 타이틀을 메인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그냥 바로 옆칸 공간 책상에 앉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대단해보일 거라는 생각, 최하위 직원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그곳에서 일상을 소비하는 걸 너무 쉽게 무시해버린다면 그건 정말 주제파악을 못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녀석과 마주쳤을 때는 에구, 저거랑 왜 마주쳤나 싶었는데 잠깐의 그 재회가 오히려 오늘 하루를 더 이악물고 심기일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제 다시는 동네에서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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