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장두석씨라기보다는 유명한 개그물 "부채도사"를 논한다면 젊은 세대들도 많이 알만한 원로 개그맨이 장두석씨다.
1957생이시니 올해 우리나이로 친다고 해도 65세.
100세가 국민적인 나이가 되어가는 요즘 너무 빠른 나이로 하늘의 별이 되셨다는 소식이다.
이것저것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정신이 없다보니 예전과는 달리 이런 소식을 남들보다 늦게 알게 되더라.
이 소식을 들은 것도 어제 오랜만에 방문했던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회원의 글을 통해서다.
본업인 개그로써도 유명했지만 노래 실력도 출중해서 가수로써도 활동한 이력이 있을만큼 다재다능한 분이었는데 개그맨이 본업인 분들의 직업 변경은 너무 험난하다는 고정 관념을 뛰어넘기 위해 무척 난관이 많으셨던 분으로도 유명하다.
내 기억속 장두석씨의 작품을 꼽으라면??
먼저 80년대 중반쯤 유머1번지라는 개그 프로그램의 "아르바이트"라는 코너를 꼽고 싶다.
동료 개그맨 김정식씨, 개그우먼 임미숙씨와 호흡을 맞춰 매주 셀 수 없는 아르바이트를 소개했고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다채로운 아르바이트를 개발해서 소개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는 늘 학교 후배인 김정식씨를 좀 거칠게 대하는 이미지를 많이 연출해서 실제로도 인성이 좀 거친 거 아닌가 싶은 느낌도 받았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순하고 어리어리하게 보이던 김정식씨가 불량한 시절을 오래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두번째로는 시커먼스??
역시 정통 개그 프로그램이 절정에 다다랐던 80년대 후반 쇼 비디오자키라는 프로그램에서 선보였던 코너였다.
지금은 유명 개그우먼 박미선씨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진 이봉원씨와 콤비로 말 그대로 시커먼 분장을 하 나와 의미를 알 수 없는(??) 랩을 쉴 새 없이 내뿜던 코너로 꽤나 인기가 많았었다
장두석씨는 개그맨으로 데뷔할 무렵 가수로써도 데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가 이미 개그맨으로 데뷔한 직후였기 때문에 가수 데뷔가 무산되었다는 말도 있다.
더 웃긴 건 아무리 옛날이었다고 해도 한 사람이 개그와 노래로 동시 데뷔하는 게 금지된 것도 아닌데 당시에는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명분도 없는 담당자의 개인 판단이었다고 하니 욕심도 많고 노래에 대한 열정도 있던 장두석씨는 진지함이라곤 엿볼 수 없던 시커먼스라는 코너를 통해 나름대로 자기 만족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세번째로는 그 유명한 부채도사!!
"실례실~~례합니다... 실례실례하세~요~~~ 쑉쑉 들여다보는 부채도사 집이 맞나요? 그래, 그래. 맞아~~ 어떻게 알고 왔어??"
장두석씨는 당시 요즘과 달리 떴다 하면 무조건 시청률을 보장해주는 10대들을 지향한 개그맨은 아니었다.
내 기억으로는 단발이든, 고정이든 꾸준히 얼굴을 내비치며 시청자들을 반갑게 해주는 그런 존재였다.
한 프로그램을 끝내고 나면 생각보다 공백도 꽤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뭐 할 게 없나?? 개그 더이상 안하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던 그가 1991년 여름쯤이었나 고된 직장 생활로 오랜만에 TV앞에 앉았던 내 눈에 들어온 개그 코너에 등장했다.
이름하여 부채도사!!
자신의 점집에 방문하는 사람의 점을 치며 개그를 이어가는 코너였는데 처음엔 단발로 끝낼 생각으로 고안해낸 이 코너는 단번에 시청자들의 눈에 들어 장기 코너로 올라서고 결국 연말엔 장두석씨에게 개그 대상의 영예가 안겨진다.
코너 속에서 부채도사와 방문객의 초반 대사도 초반엔 간단하게 평소투로 이어지던 인삿말이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장두석씨의 음악 열정에 힘입어 자신만의 음률을 실은 뮤지컬체(??)로 순식간에 유행가로 번졌었다.
열정만큼 잘 풀리지 않았던 음악에의 꿈.
장두석씨의 진정한 꿈은 아마 노래가 아니었을까...
인기의 탄탄대로에 올라서고 나서도 장두석씨가 뒤늦게나마 열정을 불살랐던 건 노래였다.
개그맨이라는 직업의 이미지가 그만큼 강한 것도 있겠지만 90년을 넘어 장두석씨는 정식으로 음악 활동에 열을 올렸고 틈만 나면 자신의 노래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애썼지만 결과가 그리 좋지는 못했다.
개그맨 이경규씨가 너무 진지한 영화로의 데뷔를 실패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겠지만 늘 시청자들에게 무한한 웃음을 선사한다는 개그맨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남을 웃기던 사람이 진지함을 내뿜는 가요를 부른다는 것을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다.
2010년대 전후 90년대에 인기있었던 시커먼스나 부채도사의 이미지를 앞세운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장두석씨는 자신에게 내재되어있던 진지한 음악의 열정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었다.
2000년대를 넘어 여러 사업도 시작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게 잘 풀리지 않았는지 어느 날 갑자기 오랜만에 TV에 얼굴을 비춘 그의 얼굴은 많이 야위어 있었고 이젠 개그계로 돌아온다고 해도 그가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보다는 우리가 도리어 힘을 불어넣어주어야 할 것 같은 이미지였으니까.
내가 그를 방송에서 마지막으로 본 건 2006년과 2007년 가요콘서트 프로그램이었는데 단 1년 사이에 살이 너무 지나치게 훌쩍 빠진 그의 모습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었다.
많은 재능, 못다 이룬 꿈 때문에 앓았던 속앓이가 지금쯤 그 먼곳에서는 모두 해소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도 난 이렇게 내 푸릇푸릇 하던 시절을 즐겁게 장식해주었던 분을 또 떠나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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