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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진행형 나의 인생 정말 옛날 여자였던 우리 할머니라는 사람

頑張れ 2024. 6. 28. 11:36

 내가 우리 할머니와 처음으로 만났던 게 내가 1~2살쯤 되었을 때란다. 

허구헌날 아무 비전도 없는 딴따라 생활에 젖어 모든 걸 내팽개치고 바깥으로만 돌던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하고 사는지 너무 궁금해서 오랜만에 물어물어 아들의 집을 찾아오신 우리 할머니. 

 그 때 우리 어머니 곁에 앉아서 새우깡을 먹고 있던 아기가 바로 나였단다. 

우리 할머니는 흔히 말하는 옛날 여자이자 천상 여자였던 분이다. 

지금이야 부모들도 점차 자식들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구상을 필수적으로 가꾸는 게 당연한 시대이지만 적어도 그 시절 남편, 아들 내외, 손자들까지 챙기느라 평생을 보내신 우리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 돌아볼 틈이라고는 1도 없었고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다 가신 그런 분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소식조차 없자 찾아오셨는데 아들은 여전히 두문불출이고... 

눈 앞에 보이는 이제 돌지난 아기가 손자라는 말을 들으셨을 때 너무 예쁘고 기특한 마음 뿐이셨단다. 

 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할머니의 친정집은 꽤나 넉넉한 형편이셨다는데 형제자매들중 막내딸로 태어나 가족들의 사랑도 많이 받으셨던 게 우리 할머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오빠, 언니들은 모두 넉넉한 가정으로 시집, 장가를 가셨다는데 유독 우리 할머니는 당시로써는 그다지 볼 것 없는 우리 할아버지와 맺어지시고는 평생을 가족들에게 베푸느라고 본인을 돌아볼 사이도 없으셨다. 

그 시절, 우리 할머니랑 동년배이신 다른 노인분들은 글자를 모르는 분들도 많으셨었고 어린 시절에 딸자식은 학교 같은 거 다닐 필요없다고 취급받던 시기에 우리 할머니는 초등 교육까지 받으실 만큼 친정집에서는 사랑을 독차지하던 막내 딸이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형편이 나아지지는 않고 점점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할머니의 오빠나 언니, 조카분들음 무척이나 안쓰러워하셨다. 

 

 

할머니의 모든 것은 우리들... 

 

 할머니는 온갖 애교와 장난끼도 많이 갖춘 타고난 명랑 소녀 기질을 갖고 계신 반면, 누구에게나 자칫하면 만만하게 보일만큼 매사를 져주는 게 옳다고 믿는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다소 급하고 완강한 성격을 가진 분이라 너무 대조를 이루셨던 탓에 할머니가 얼마나 답답해보였는지 어린 우리도 직감할 수 있을 정도랄까... 

 

"참을 인이 3번이면 XX도 면한다는 소리 못들었어??"

 

 저놈의 말도 안되는 소리... 

허구헌날 할머니가 우리에게 하시던 말씀... 

요즘 세상에 3번을 참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걸 저질러버리는 게 나을지도... 

 그 덕에 늘 할아버지께는 구박을 받았지만 우리만큼은 그런 할아버지를 이해하라고 가르치셨고 할머니 스스로도 그런 할아버지를 마음속 깊이 의지하고 따르는 천상 여자... 

 

 누구에게 뭐 하나 제대로 받은 건 없으시면서 두 손자에게는 모든 걸 내어주시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내어주시던 게 우리 할머니였으니까... 

 

 

말년에도 복이 없으셨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환갑 잔치 사진....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해보니 오히려 서글퍼지는 사진... 

요즘 환갑은 뭐 별로 크게 의미도 두지 않지만 저 때는 노인들의 장수를 기원하는 60번째 생일이라는 의미를 크게 두던 시기다. 

 대개 자식들이 부모님께 해드리는 멋진 행사였는데 나도 저때는 9살쯤 됐을 때라 환갑이 뭔지도 몰랐다. 

시대답게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지금의 80대 노인보다 더 나이드신 모습도 놀랍고 무엇보다 저 당시 할머니의 환갑 잔치는 대부분을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분이 스스로 충당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아버지라는 사람이 워낙~~~에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 두분께 뭐 챙겨드리지도 못했고 오히려 친천 고모랑 아저씨들이 도와줘서 지낼 수 있었던 할머니의 환갑... 

 그나마 저 잔칫상 앞에서 큰절을 올리는 아버지랑 어머니의 모습에 감동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날 때마다 정말이지 우리 할머니는 감사할 구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일에 감사하고 감동할만큼...

 정말 평생에 복이라고는 없던 분이라는 사실... 

그러니 할아버지에 이어 아들 내외, 다시 이 두 손자들까지 챙기시느라 온몸이 내려앉는 순간까지도 우리 곁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며 가셨겠지... 

근데 요즘도 가끔 꿈에 나타나는 할머니 얼굴에 늘 근심이 서려있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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